트렌스포터 위에 서서 커크가 스팍을 넘겨다보았다. 커크는 문득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몇 년 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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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정도의 위험성을 가진 행성으로의 빔-다운 미션이었던 것으로 커크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땐 아직 지금만큼 둘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서글서글한 성격의 커크는 스팍을 허물없이 대했지만 스팍 쪽의 서늘한 태도 덕에 둘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지속되었다. 그것에 굴하지 않고(?) 커크는 스팍을 자주 돌아보며 싱긋 미소 짓곤 했다.
그 때도, 아니, 그 때는 더더욱, 위험한 일에 나서는 상황인 만큼 커크는 스팍에게 씨익 웃어보였었다. 그런 커크를 스팍은 그날따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 때 그들이 빔-다운됨과 동시에 발밑의 지반이 융기하여 커크와 스팍을 포함, 파견팀 모두가 위험에 처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지표를 가진 행성이었기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갖은 고생을 다 하고, 결국 행성의 정보들을 담은 샘플을 채취한 후 그들은 엔터프라이즈호로 돌아왔다.
다행히 파견팀 모두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미션을 마친 것에 기뻤던 커크는 뿌듯한 얼굴로 스팍을 돌아보았다. 스팍도 자신이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커크를 바라보았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검댕과 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로 커크는 스팍에게 씨익 웃었다.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스팍의 얼굴에 ‘의문’이라는 의미의 작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커크와 모두는 피로했고, 스팍은 과학장교로서의 일이 남아있는 상황이었기에 곧 둘의 시선은 떨어졌고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지 않았을 때, 함장실의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커크에게 스팍이 찾아왔다. 일에 관한 이야기라면 커뮤니케이터로 대화를 나누거나 자료 분석실이나 하다못해 브릿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둘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것은 당시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스팍?”
스팍의 얼굴에는 ‘곤란함’이라는 미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는 머뭇거리거나 하는 감정적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커크가 권하는 의자-커크로부터 맞은 편 소파-에 앉은 스팍이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캡틴.”
“개인적인 궁금증이라면 지금은 날 ‘짐’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
잠시 생각하던 스팍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캡틴.”
“‘짐’이라니까.”
“네, 짐.”
스팍이 고쳐 대답하자, 짐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미래로부터 온 스팍은 그들이 둘도 없는 친구라고 알려주었고, 그 진실을 커크는 이미 그와의 마인드 멜드 상태에서 보았다. 다른 세계의 커크의 행동은 꽤나 응용할 가치가 있었다. 물론 그 느끼함만 빼고.
“짐,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저를 바라보고 당신이 ‘그런 식으로’ 웃곤 하냐는 겁니다.”
“응?”
커크는 자신도 모르게 뜨끔하는 심정으로 스팍을 바라보았다. 스팍은 ‘얘가 왜 이러는 걸까?’라는 조용한 시선을 유지했지만, 사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커크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역시 느끼했던 거야!?”
스팍의 한쪽 눈썹이 약간 위로 올라갔다.
“무슨 말씀이신지?”
“.......”
커크는 속으로 아차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래로부터 온 스팍이 좋아라하는 미래의 커크 함장의 미소를 따라한 것이었기에 그 걱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스팍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런 의미의 질문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크는 조금 헛기침을 하고 스팍의 첫 번째 물음에 대답했다.
“감정적으로 위안이 되잖아. 안심시켜주려고.”
“저를 말입니까?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벌칸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
“그래도 반은 인간이잖아.”
“.......”
스팍의 말을 잘라먹고 커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커크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벌칸인들도 ‘기계’는 아니지. 무엇보다 나도 그렇게 하면서 감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제게 웃으면서 말입니까?”
“그래. ‘저 유능한 일등항해사가 나와 함께 있구나.’하고 말이야.”
“.......”
스팍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졌다. 경미한 정도였지만, 적어도 그 눈빛이 흔들리는 것은 어떻게도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스팍은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단지 간단한 인사를 커크에게 건넸을 뿐이었다. 커크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손을 휘휘 저어 스팍을 배웅했다. 스팍은 그렇게 그 날 커크의 방에서 나갔고, 그 후 언젠가부터인가 커크가 스팍을 향해 미소를 지을 때 스팍은 오히려 더 무심한 눈길로 그 미소를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팍 나름의 반응이었다. 커크는 물론 그것에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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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동안의 일들이 기억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커크는 스팍을 돌아보았다. 그는 스팍을 향해 싱긋 웃었고, 스팍은 그동안처럼 무심한 시선으로 한쪽 눈썹을 슬쩍 올리며 그 미소를 받았다. 커크는 맥코이와 스팍 모두 트렌스포트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하고 스캇을 향해 말했다.
“에너자이즈!”
[굥굥굥굥....]
세 인영이 행성의 해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커크는 주변을 둘러보며 약한 감탄을 했다.
“음. 지구와 무척 비슷하군.”
“‘비슷하다’는 것은 적합한 단어가 아닙니다. 현재의 지구보다는 산소 농도가 10% 이상 높군요. 예상대로 지상에서는 수치가 좀 더 오르고 있습니다. 이렇다면 생물군도 다를 것이고...”
스팍이 손에 든 것을 들여다보고, 부지런히 보고를 했다.
“트라이코더에 따르면 곧 폭풍이 몰려올 겁니다. 이곳에서 18.6Km 떨어진 해저의 활화산이 분화를 시작한 까닭입니다. 이 지역에는 1시간 후엔 해일이 심하겠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빔-다운되진 않았군요.”
“그래? 조심해야겠군. 그리고 서둘러야겠는걸. 각자 흩어져서 탐사한다. 20분 후에 이곳으로 집합하도록.”
“알겠습니다.”
커크의 지시에 스팍은 성실하게 움직여갔다. 둘은 서로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행성을 함께 탐사해온 커크와 스팍이었다. 자세한 지시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둘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맥코이는 잠시 후 스팍이 걸어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팍은 한 방파제에 발을 디디고 섰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의 선-조사에서는 이 행성에서 지성체의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발 디디고 선, 바다를 향해 비죽 나온 그것이 마치 ‘방파제’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단순히 바닷물에 침식되는 과정에서 단단한 지반만이 남아 그러한 형태를 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은 사라진, 이 행성의 고대 문명의 마지막 흔적일까. 스팍은 한참동안 그 주위를 맴돌았으나, 달리 정보로 쓰일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 방파제 같이 생긴 그곳의 끝까지 걸어가 먼 바다를 내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코더에서 삐빅-하는 기계음이 울렸다. 스팍은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군.’
코더는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숫자들이 요동쳤고, 바늘들이 마구 왔다 갔다 했다.
‘포스 필드가 감지되고 있어. 이건 대체 뭐지? 코더가 처리해내지 못하는군. 이것은 미지의 힘인가? ...아니야, 코더의 기계 결함으로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80% 이상이겠군. 하지만 나머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스팍은 중얼거렸다.
“Fascinating.”
그가 그렇게 그 기이한 현상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그의 목 뒤로 서서히 다가오는 손길이 있었다. 이 행성에 있는 것은 커크와 맥코이, 그리고 자신 밖에 없었으므로 스팍은 그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현상에 대해 의견을 나눌 이가 필요했기에...
그러나 그것은 그의 큰 실수였다.
[푹, 슈우욱...]
“...!?”
무언가가 자신의 목덜미에 따끔하고 닿았을 때 스팍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몇 초 만에 시야가 아득해지더니 곧 시커먼 암흑이 가득 내려앉았다. 그 마지막 몇 초 동안 스팍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맥코이의 얼굴이었다. 맥코이의 중얼거리는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 마취제는 벌칸의 피도 어쩔 수 없을 걸.”
맥코이의 눈빛은 싸늘했다. ‘어떻게....’ 스팍은 더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비틀거리던 스팍을 맥코이는 슬쩍 밀어 바다로 떨어트렸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가라앉는 스팍을 맥코이는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커크가 지시한 시간이 지났고, 맥코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스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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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이 바다에!?”
그들은 모이기로 한 곳에서 접선을 할 수가 없었다. 해일은 스팍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들이닥쳤다. 커크는 엔터프라이즈의 스캇에게 그냥 세 명을 빔-업하기를 요청했고, 스캇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빔-업된 것은 두 사람-커크와 맥코이 뿐이었다. 스캇은 스팍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딘가 해안동굴 같은 곳 등 지표가 아닌 곳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는 것이 스캇의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그래서 우리밖에 빔-업 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럴 리 없어! 스팍은....!”
“.......”
스팍을 구출하러 다시 내려가겠다는 커크를 맥코이가 호통을 쳐서 말렸다. 계속해서 폭풍우가 치고 있는 그 지역에서 스팍을 탐지해내는 것조차 스캇 같은 천재적 엔지니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곳으로 다시 내려간다면 목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산채만큼 높아, 셔틀을 내려 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커크는 스캇에게 계속해서 스팍을 탐지할 것을 지시하고 그 계기판을 분노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러다 격한 감정적 소용돌이를 이기지 못하고 스팍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스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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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활화산은 계속해서 폭발했다. 폭풍은 7일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해일도 그러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다음 목적지로의 길도 길었고, 다음 목적지인 스타플리트 제 98 정거장에서 부족한 연료를 채우고 기계를 정비할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더는 그 행성에 머물러 스팍의 생존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커크는 이를 악물고 다음 목적지로 항해할 것을 명령했다. 함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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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프라이즈호가 떠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멀리까지 해류를 따라 떠내려간 스팍의 몸이 어느 한적한 해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겨우겨우 호흡만을 조절할 수 있는 정도의 위급한 상태였다. 그의 몸에 흐르는 벌칸의 피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었으나, 인간의 것을 넘어선 체력은 그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지각 능력은 거의 상실된 상태였다. 그러나 점점 그것은 아주 조금씩 돌아오고는 있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자신에게 주입한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라기보단 단순히 강력한 마비독인 것 같았다. 물론, 인간이 그것을 맞았다면 곧 사망에 이르렀겠지만, 그는 하프 벌칸이었다.
그렇게 조금 돌아온 지각 능력 덕에 스팍은 자신이 해변 같은 곳에 밀려와 있다는 것, 그리고 뭔가에 의해 자신의 위에 슬그머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체력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다시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